2007년 07월 24일
흐르지 않는 강
처음써보는 장르라서 OTL
흐르지 않는 강
수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게 편지가 왔다. 고향에서 역병이 돌고 있으니 이번 방학은 돌아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어떠한 병일까. 여동생 에스텔라가 적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웃집 한나는 꼭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어.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토해냈지. 하지만 한나가 토해놓은 것은 아침에 먹은 양송이 스프가 아니었어. 그거 알아? 우리가 어렸을 때 구식 화장실에서 본 그 하얀 구더기. 그래, 딱 그렇게 생긴 징그러운 것 들을 토해내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구더기와는 약간 다른 생김새였지만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긴 충분했지. 그 괴상한 광경에 문병 왔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방 안에 남은 사람이라곤 창백한 표정의 한나 어머니와 나뿐이었지. 이래 뵈도 난 한나와 꽤 친한 사이었잖아? 차마 한나를 버리고 갈 수 없어서 문 근처에서 어물쩡거리고 있었는데. 아아, 차라리 그 자리에 있지 말고 나가버릴 걸 그랬나봐. 글쎄……』
편지의 끝부분은 찢겨져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편지의 머릿말에 가족들은 모두 다른 마을로 피난 갈 계획이니 안심하라고 적어놨지만, 끝부분의 뜯겨나간 자국은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누가 에스텔라의 편지에 손을 댄 것일까?
물론, 평소에 덜렁거리는 에스텔라의 성격으로 봤을 때 실수로 찢어놓고 그냥 보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그날로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병에 걸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당장이라도 그들의 무사한 모습을 보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저기, 어디까지 가시나요?”
“엘버 레스트.”
내 앞에 마주보고 앉은 검은 슈트의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내가 다소 무뚝뚝한 말투로 고향의 지명을 내뱉자, 그가 손바닥을 치며 아는 척을 한다.
“그 곳이라면 잘 알고 있죠. 세상 끝에 있는 마을 아닙니까?”
“그렇게 불리기도 하죠.”
“엘버 레스트는 검은 강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검은 강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검은 강은 세상의 끝에 있는 강이다. 그리고 아무도 건널 수 없는 강이기도 하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강물은 보통 강들과 다르게 전혀 흐르지 않는다. 그 강물만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배를 띄우면 가라앉았고, 새가 그 강의 상공을 지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잡아끄는 것처럼 힘없이 낙하해버렸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그 강을 건널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강을 불쾌하게 여겼다. 검은 강을 본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도 나돌았다. 그래서 검은 강을 보았냐고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검은 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남에게 들은 이야기인양 말해야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나에게 검은 강을 보았냐고 묻는다.
불쾌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멋쩍은 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생각보다 더 딱딱하게 대답을 해버렸다. 남자는 눈을 꿈벅거리더니, 옆에 놓아두었던 신문을 괜스레 펼쳐든다. 그 신문은 아까 전에 남자가 다 보고 접어두었던 것이었다.
신문의 1면엔 뉴스거리가 없을 때나 다루어지는 지루한 스캔들 기사가 실려 있었다. 엘버 레스트의 역병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신문인가요?”
내 질문에 남자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 네. 오늘 나온 석간신문이에요.”
“전염병 이야기는 없나요? 예를 들면 엘버 레스트의.”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벌써 난리가 났겠죠.”
“아.”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에스텔라의 편지에는 역병이 돌고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저 남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정말로 엘버 레스트에 역병이 돌고 있다면, 내가 그곳으로 가는 기차표를 쉽게 끊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정부가 벌써 규제를 하고 나섰겠지.
설마, 에스텔라가 장난을 친 건가?
“저기요! 벌써 도착한 것 같네요.”
“아, 네.”
생각에 잠긴 사이에 벌써 역에 도착했다. 남자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기차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마을 입구에서 도착했다. 마부는 내가 내리자마자 서둘러서 돌아가 버렸다. 이곳에서 실종 사건이 잦다고 말하면서.
마을입구는 너무나 고요했다. 원래 조용한 시골마을이긴 하지만, 예전의 그 고즈넉한 분위기는 아니다. 무언가 결여된 것 같은, 허무하면서 음침한 공기. 헛기침을 해서 그런 분위기를 흩트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 시간대면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도 한두 명쯤은 보일만 하건만,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하다. 낮게 깔려있는 저녁안개가 심장을 죄어오는 것 같다.
떨리는 심장을 달래고, 또 달래면서 겨우 집 앞까지 도착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저 왔어요!”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했다. 대답이 없다. 내 목소리만 메아리쳐서 작게 들리는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을 무시한 채, 등의 불을 밝힌다.
그리고 보았다.
에스텔라와 어머니, 아버지라고 추정되는 그것을.
머리가 있어야할 부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 잘랐다고 하기에는 목 부분이 너무 깨끗했다. 늙은 상이병의 잘린 부위같이, 처음부터 그렇게 생긴 것처럼 아물어 버린 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문을 박차고 미친 듯이 다른 집을 쑤시고 다녔다.
모두가 머리 없이 웃고 있다.
나는 구더기 같은 토사물을 밟고 엎어져 버렸다.
“루이지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알폰스.
마을에 있을 때, 나를 잘 따르던 꼬마 녀석이다.
알폰스는 토하고 있었다. 에스텔라의 편지 내용처럼 구더기를 토하고 있었다. 내가 밟고 넘어진 것은 알폰스의 토사물이었다.
“루이지 형. 어서와.”
“……어떻게 된 거야?”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떻게 된 거냐고!”
알폰스가 웃는다.
“형도 곧 알게 될 거야. 아무튼 내가 '그곳'에 가는 걸 배웅해 줄 사람이 생겨서 기뻐.”
알폰스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기 시작한다. 소라껍데기에서 나오는 소라게의 몸뚱이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따로 존재했던 것처럼.
알폰스의 목에 수많은 촉수가 돋아났다. 오징어의 그것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것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알폰스의 목을 따라갔다.
달리는 알폰스의 목을 쫒는다. 알폰스는 중간 중간 나를 기다려주며 달린다. 알폰스와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검은 강.
그리고 놀라운 것을 보았다. 아무도 건널 수 없는 검은 강을 건너는 알폰스의 목을.
목 아래에 달린 촉수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자유롭게, 강의 수면을 달렸다.
주저앉아서 보았다. 뿌연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강 건너로 사라지는 그것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시커먼 강물은 흐르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너도 건너고 싶지 않니? 세상의 끝을 건너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지 않아?
시커먼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아무도 건널 수 없다. 건너는 순간,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유혹은 달콤하다.
논리적인 이유 없이 그저 유혹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에스텔라가 보낸 편지의 의문도 풀린다. 그녀는 내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달콤한 질문에 답할 기회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뱃속이 울렁인다. 토하고 싶다.<2007/7/24>
Copyright(c)2007 by MURPHY16.
# by | 2007/07/24 18:51 | 습작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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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데 이토준지 그림체랑 겹쳐서 보였어...ㄷㄷㄷ ...아니 내가 지금 BS2에서 이토준지 얘기하는거 다운받아서 봐서 그런가.(자막이 없어서 때려쳤음..)
...죄송합니다(...)재밌게 잘읽었어.'ㅂ'/소재 특이한데.
첼핀] ㅋㅋㅋㅋㅋㅋㅋㅋ촉수물 ㅋㅋㅋ 그렇군! 그러고 보니 촉수물이잖...;; 암튼 땡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