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5일
왈츠 이멘마하
어두운 공간, 마치 자신을 어둠과 함께 숨기려는 것처럼 검은 머리카락으로 자신을 감싼 청년이 있다. 머리카락 사이에는 두개의 뿔이 삐져나와 있다. 그것은 그가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은 듯한 애절한 표정으로 또는,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존재를 본 것 같이 환희에 들뜬 표정으로……. 그 역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눈과 눈이 서로 마주쳤을 때 그가 발견한건 공허한 어둠. 그들의 눈동자엔 그가 비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자리해있을 곳에는 안개와 같은 어둠만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나를 봐주는 사람은 없어.]
그는 끝없는 슬픔으로 자신을 난도질했다. 피를 먹은 슬픔은 점점 커져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폭염이 되어 군중을 태웠다. 그들은 미친 듯이 타는 불에 몸을 내맡기면서도 그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미칠 것만 같았다.
[보지 마! 그 눈으로 나를 보지 말란 말야!!]
그의 비명에 불은 더 힘차게 타오른다. 타오르는 불은 눈과 귀를 가린 '검은 검사'가 되어 그의 오른 쪽 뿔을 베어버린다.
"헉!"
그는 숨을 삼키면서 눈을 떴다. 방금 눈을 뜬 그를 낮선 천장이 - 천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낡은 천막의 - 반갑게 맞이하였다.
‘여기가 어디지?'
옷깃이 스치는 소리.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인기척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낡고 때 묻은 천 조각으로 한쪽 눈을 가린 소녀가 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 땟국이 흐르는 얼굴과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은 옷. 소녀는 척 보기에도 부모 없는 거지아이처럼 보였다.
그가 바라보자, 소녀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일, 일어나셨어요……?"
"……"
"……다리 밑에서 쓰러진 걸 발견했어요. 혹시 절벽에서 떨어지셨나요?"
그는 소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손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갔다. 역시, 오른 쪽 뿔이 잘려있다. 청년은 복잡한 심경으로 손을 무릎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성 지하에서 계속 기다렸다.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존재를.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려고만 했다. 그들은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다고 하나같이 외쳤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진짜 자신을 봐 주는 것 뿐 이었는데……. 욕망이 빚어낸 환상만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 속에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래, 그들은 그의 품속에서 기꺼이 죽음의 춤을 추었다. 단, 인큐버스의 슬픈 미소만은 끝까지 발견하지 못한 채…….
그러던 어느 날, 검은 검사가 찾아왔다. 눈과 귀를 가린 채 연약해 보이는 팔 다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검을 든 새까만 머리의 청년. 자신의 욕망을 두건과 귀마개로 막아버린 그 검사는 인큐버스의 오른 쪽 뿔을 무참히 베어버렸다.
그는 몸에 힘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볼썽사납게 쓰러져버렸다. 눈을 꼭 감았다. 검사가 남은 뿔마저 잘라버릴게 분명하니까. 그와 동시에 그의 생명도 흩어져버릴 테니까. 하지만 검사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를 포박한 채 어느 여자에게 데려갔을 뿐. 그 여자는 그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가 자신의 연인을 데려갔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서 연인의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서야 겨우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정신없이 달렸다. 난생 처음으로 겪는 바깥세상이 무서워서, 그 검은 검사가 다시 나타날까봐 무서워서 달리고 또 달렸다.
“저기…….”
소녀의 머뭇거리는 듯한 부름에 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이거라도 드세요!”
소녀가 내민 그릇에는 음식이 담겨있었다. 그릇을 잡은 손은 거칠게 터 있었다. 아마 이 식어빠진 음식을 구하기 위해 소녀는 하루 종일 마을을 떠돌았겠지……. 그는 음식을 받아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소녀는 자신을 아리나하라고 소개했다. 아리나하는 자신의 애꾸눈이 신경 쓰이는지 연신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살피면서 얘기를 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키안.”
“와 - 이름 예쁘다!“
“……”
소녀는 다친 그를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그 작은 발로 마을 이곳저곳의 흙을 밟으며 얻어온 음식을 키안에게 기꺼이 내주었고, 부르튼 발이 아플지언정 그에게 내색조차 하지 않은 채 미소만을 보여주었다.
*
“너는 왜 여기서 혼자 사는 거지?”
키안이 물었다.
“저는 오빠랑 같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빠는 지난 전쟁이후 돌아오지 않고…… 예전에 살던 집은 타버렸죠. 저처럼 어린 아이를 고용해 주는 곳도 없으니…… 그냥 여기에서 천막치고 사는 거죠 뭐.”
아리나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 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눈물이 느껴졌다. 그는 소녀의 웃음에 팔라라(태양)의 따스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저 난생처음 겪는 '미치지 않은 온정'에 마음이 풀려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파멸을 예상하고도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그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순수한 소녀의 온정에…….
소녀는 너무나도 쉽게 그를 침범해 나갔다. 처음에는 마음 외곽에 있는 경계심을 넘어서더니 이윽고 한 가운데 있는 높은 언덕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는 점점 자라버렸다. 이제 그가 베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크게. 소녀에 대한 마음이 나무처럼 자라날수록 그림자도 커져만 갔고, 나무의 그림자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었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의문을 토해냈다.
[아리나하의 눈동자는 과연 너를 비추고 있을까..?]
[혹시 너에게서 환상을 보고 있는거 아냐?]
"아냐!!!!!"
그의 비명이 바람을 부른다.
[장담할 수 있어? 환상이 아니라는 걸?]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잖아!!!!"
강하게 부는 바람에 그림자는 비웃는 듯 흔들린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그들의 의문은 더욱 격해진다. 이윽고 의문은 슬픔이 되어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다.
그날도 키안은 아리나하의 머리카락 같이 붉은 이웨카(에린의 두 번째 달, 마나의 기운을 담고 있다.)를 보면서 상념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림자에 대한 슬픈 상념에. 아리나하는 그런 그의 우울한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앉았다.
“키안, 무슨 생각을 해요?”
“……아무것도 아냐.”
“……”
아리나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키안은 소녀의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때, “와-아!! 키안! 저것 좀 봐요! 별똥별 이예요!”
키안은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본다.
“……아름다워”
“그렇죠? 아차! 소원 빌었나요?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요!”
“……소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리나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들의 눈이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아리나하는 가까이서 이야기할 땐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너무나도 푸른 눈. 그 눈엔 그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소녀의 눈은 더욱더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너무나 가슴 시리게…….
그 날 밤 키안은 다 낫지 않은 몸을 이끌고 아리나하의 낡은 천막을 떠났다.
아리나하는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키안은 없었다. 이때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하루 종일 천막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다보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녀는 배가 고팠다. 키안이 떠나버렸다는 슬픔에 하루 종일 끼니도 잊고 울었던 것이다.
아리나하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지금가면 모두들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이니까 먹을 것 좀 얻어올 수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날따라 사람들은 더욱 냉랭했다. 매일 밥을 얻으러 오는 소녀가 귀찮았던 것일까? 소녀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는 인심을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나 같은 아이가 한 둘도 아니니……. 달라는 대로 주는 것도 힘든 일 일거야.’
아리나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천막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때, 어느 집 마당의 잘 익은 포도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배가 고팠던 탓일까.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집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탐스럽게 익은 포도에 닿는 순간.
“크르르르”
아리나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오금이 저리도록 사나워 보이는 시커먼 개가 소녀를 노려보고 있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뛰고 있었다. 사나운 개 앞에서 뛰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사실을 잊은 채. 정신없이 뛰는 그녀를 보고 개가 흥분하여 날뛰기 시작했고, 개를 속박하고 있던 줄은 제대로 묶여있지 않은 터라 쉽게 풀어졌다.
소녀는 개의 날카로운 이빨에 철저히 유린당했다. 연약한 살은 선홍빛 피를 뿜어댔고 그녀의 정신은 물에 젖은 종이처럼 너절해지고 있었다.
키안은 길거리에서 주운 낡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인간들의 도시를 헤맸다. 그 로브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머리에 있는 뿔을 당당하게 내보인 채 길거리를 걷는 건 ‘나 포워르(마족)이니 잡아주십쇼-’하고 광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해가 지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아리나하의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그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다시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정말 떠나기 전에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막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혈향. 키안의 예민한 감각은 피를 노래하고 있었다.
‘피?’
피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서늘한 기분이 그를 엄습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는 아리나하를 발견했을 때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겨우 숨이 붙어있는 정도. 지금당장 힐러에게 데려간다고 해도 소녀는 가망이 없었다.
‘아리나하가 죽어가…….’
그의 손은 머리위의 뿔에 가있었다.
‘내 생명이 담겨있는 이 것을 준다면……죽지 않겠지.’
망설일 틈이 없었다.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인생 최후의 마법.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문의 외우는 입술이 떨려왔다.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진짜 자신을 봐주지도 않는 여자애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한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래, 그런 건 이제 상관없잖아.’
주문을 모두 외웠을 때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눈앞의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옆에서 소녀의 힘없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리나하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정확이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자신 대신 죽어간다는 것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소녀는 방금 정신을 차린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키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키안은 자신을 얼굴을 어루만지며 너무나 애달프게 흐느끼는 아리나하를 보았다. 소녀의 한쪽만 남은 눈에서는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저 눈물이 만들어낸 잔상이었을까?
키안이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 그는 소녀의 눈에 비친 흐릿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소녀의 푸른 눈 속에 비친 그는 흐릿하지만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무나 슬프게. 하지만 너무 아름답게……. <2006/08/06>
+
고등학교 졸업하고나서 소설쓰겠다고 써본 단편인데[...]
뭐, 열심히 멋을 부린 것 같지만, 영 폼이 안납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최루물이라고 쓴건데...눈물은 커녕 감동도 없어ㅠㅠ
뭐, 제 인생의 첫 소설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끝내본 거에요.
남아있는 소설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OTL
미워도 제 자식이죠.^-^;
아 참, 이거 마비노기 팬픽이에요. 안경소년단의 외전격인 글입니다.
(아놔; 안경소년단 후샏 ㅠㅠ)

마비노기에서 인셀리아와 아이젠베르크의 결혼을 축하해서 그린 자축전입니다...
자축전......
아이젠이 제 자캐에요, 여자애죠. 남캐인 인셀리아와 결혼해서
'인셀리아의 부인 아이젠베르크'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습니다.
백합...ㅇ>-<
인셀은 아이젠베르크의 남편...푸하하;
# by | 2007/07/15 02:13 | 습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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